1. 청국장의 점성을 만드는 핵심 미생물 ― 바실러스 서브틸리스
청국장은 다른 발효 콩 음식과 구별되는 독특한 특징을 가지고 있는데, 그중 대표적인 것이 바로 강한 끈적임이다. 단순히 삶은 콩을 발효시킨 것임에도 불구하고, 청국장은 국자나 숟가락으로 저으면 실처럼 길게 늘어나며 독특한 점성을 드러낸다. 이 현상을 일으키는 주인공은 바로 **바실러스 서브틸리스(Bacillus subtilis)**라는 세균이다. 이 세균은 원래 볏짚과 콩 껍질 표면에 자연적으로 존재하며, 전통 청국장 제조에서 삶은 콩을 볏짚으로 덮어 따뜻한 아랫목에서 숙성시키는 과정에서 활성화된다. 바실러스균은 콩 단백질을 아미노산으로 분해하고, 동시에 다당류와 점액질 물질을 합성해내는데, 이것이 청국장 특유의 끈적임을 형성한다. 흥미롭게도 일본의 낫토 역시 같은 세균군에 의해 발효되며, 비슷한 점성을 보인다. 따라서 청국장의 끈적임은 음식이 상했다는 신호가 아니라, 오히려 발효가 정상적으로 이루어졌다는 과학적 지표다. 발효 세균이 만들어내는 이 점성은 청국장의 품질과 기능성을 평가하는 중요한 기준으로도 여겨진다.
2. 청국장 끈적임의 과학적 원인 ― 폴리글루탐산(γ-PGA)
청국장이 끈적이는 이유를 세밀하게 분석해보면, 그 중심에는 **폴리글루탐산(Poly-γ-glutamic acid, γ-PGA)**이라는 고분자 물질이 있다. 바실러스 서브틸리스는 콩 단백질을 분해하면서 글루탐산이라는 아미노산을 생성하는데, 이 글루탐산이 사슬 모양으로 중합되어 γ-PGA라는 물질이 된다. γ-PGA는 물에 잘 녹으면서도 강한 점성을 띠어 청국장을 저을 때 실처럼 늘어나는 현상을 만든다. 그러나 γ-PGA는 단순히 점성을 부여하는 물질이 아니라, 인체 건강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우선 장내 유익균이 번식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 소화 건강을 돕는다. 또한 칼슘의 흡수를 촉진하는 역할을 해 골다공증 예방에도 기여한다. 더 나아가 혈중 콜레스테롤을 낮추고, 항산화 작용을 통해 노화 방지 효과까지 보고된 바 있다. 화장품 분야에서는 γ-PGA가 뛰어난 보습 성분으로 주목받고 있으며, 바이오 소재 연구에서도 응용 가치가 크다. 즉, 청국장의 끈적임은 단순한 식감의 특징이 아니라, 기능성 물질이 풍부하게 생성되었음을 알려주는 신호라고 할 수 있다.
3. 발효 조건에 따른 점성 변화 ― 온도와 습도의 영향
청국장의 점성은 세균이 만들어내는 대사산물의 결과지만, 발효 환경의 차이에 따라 점성의 강도와 품질이 크게 달라진다. 전통적인 방식에서는 삶은 콩을 볏짚으로 덮고 따뜻한 아랫목에 두어 2~3일간 발효시킨다. 이 과정에서 온도와 습도는 결정적인 변수로 작용한다. 발효 온도가 35도 전후일 때 가장 이상적인 점성이 형성되는데, 온도가 낮으면 세균 활동이 둔화되어 점성이 약해지고, 반대로 45도를 넘으면 지나친 세균 증식으로 인해 쓴맛이나 불쾌한 냄새가 발생할 수 있다. 습도 또한 중요하다. 발효 환경이 너무 건조하면 γ-PGA의 생성량이 줄어 점성이 약해지고, 반대로 지나치게 습하면 곰팡이나 잡균이 증식해 청국장의 품질이 떨어진다. 현대식 청국장 제조에서는 이러한 변수를 과학적으로 제어하기 위해 발효실과 자동화된 배양 시스템을 활용하여 안정적인 품질을 확보한다. 그러나 전통 방식에서 얻어지는 자연 환경의 미묘한 변화와 다양한 미생물의 공존은 오히려 독특한 풍미와 깊은 맛을 더해주는 중요한 요소로 평가된다. 결국 청국장의 끈적임은 발효 조건의 균형과 세균 활동이 어우러진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4. 청국장 점성의 의미와 가치 ― 전통 발효식품의 건강 기능성
청국장의 끈적임은 단순히 불편한 식감이 아니라, 전통 발효식품이 지닌 건강성과 문화적 가치를 상징한다. 실제로 청국장에는 γ-PGA 외에도 나토키나아제, 이소플라본, 사포닌 등 다양한 기능성 성분이 풍부하게 함유되어 있다. 나토키나아제는 혈전을 용해해 심혈관 질환 예방에 탁월한 효능을 지닌 효소이며, 이소플라본은 여성 호르몬 균형 유지와 골다공증 예방에 도움을 준다. 사포닌은 면역력 강화와 항암 작용에 기여한다. 이러한 성분들은 청국장의 점성이 잘 형성되었을 때 더욱 풍부하게 생성되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끈적임은 발효가 제대로 진행되었음을 나타내는 긍정적인 지표라 할 수 있다. 과거에는 겨울철 단백질 보급원으로 먹던 서민 음식이었던 청국장이, 오늘날에는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건강 기능성 발효식품으로 자리 잡은 것도 이 때문이다. 청국장의 끈적임을 불편하게만 보는 대신, 과학적 원리와 전통적 지혜가 만들어낸 고유한 가치로 이해한다면, 우리는 이 음식의 진정한 매력을 발견할 수 있다. 청국장의 점성은 단순한 발효 부산물이 아니라, 한국 발효 과학이 남긴 귀중한 유산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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